2013.07.25 그냥 아일랜드 2013. 9. 21. 16:39

한국->아일랜드 여정 1

출발 하루 전, 전부터 가고 싶었던 군산의 중동호떡집을 들러 호떡을 사먹었다.

1943년 문을 열어, 올해로 70년이 되었다는 그 호떡집. 

지금은 옛날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두고 그 건너편 건물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기름에 튀기지 않고 구운 느낌의 옛날 호떡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달콤한 시럽이 주루룩. 

옛날 사람들은 이런 맛의 호떡을 먹었겠구나. 담백하고 폭신폭신한 맛이 참 좋았다. 검은 시럽이 툭 떨어질라 아슬아슬하게 먹는 재미도 즐겁다. 한 방울의 낭비도 없이 흡입해주마!  

꿀맛같은 잠깐의 여유를 누리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1년을 전혀 다른 타지에서 살게 되는 거다. 그 짐을 각자 가방 2개에 담아야한다. 한 치의 공기도 용납할 수 없다. 

난장판이 된 거실과 압축에 온 몸을 바치는 남편의 모습. 마치 종교의식을 보는 듯하다. 출국용 짐은 줄이려고 해도 점점 크기가 늘어나는 괴상한 것이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우리의 소식지 삐약삐약0호 배송도 아직 완료되지 못했다. 포장하고 주소 쓰고..

무엇보다도 집청소... 끄아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꾸역꾸역 모든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도 못한채, 하지 못한 일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떠맡긴다. 편치 않은 마음을끌고 공항으로 향한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하러 간다. 


미리 적어둔 항공편 내역, 자주 꺼내 쓸 손공책 맨 앞면에 적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았다.

부릉부릉, 맥쿼리 씨가 만들어준 공항도로타고 공항으로!


공항벤치에 앉아서 마지막 일지도 모를 한국식 간이점심을 먹었다. 공항에서는 라면이 금지다. 기내반입용 가방에 수저를 좀 넣어둘 것을.. 완전 진짜진짜 싫어하는 일회용 수저를 구매하게 되었다.

너무 시간에 쫓겨 당장 눈앞의 일만 처리하다보니 공항에서부터는 준비 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열심히 챙긴 출국관련 서류도 집에 두고왔다. 서로 챙긴 줄 알았던 거다. 공항 인터넷카페에서 다시 출력하는데 한 장당 400원 총 6400원.. 이런 젠장.. 게다가 스탑오버 때 제공해주는 숙소예약도, 아이폰 언락도 20분 차이로 놓쳐버렸다. 핸드폰 중지를 신청해놓고 얼이 빠져있다가 정보의 소중함을 알았다. 연이어 핸드폰 중지신청을 하려는 남편을 부여잡고 3일 무제한 데이터 로밍을 하자했다. 

저녁으로 당분간 귀할 것으로 예상되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나란히 시켜먹고 출국장으로 나선다. 

초장부터 남편의 짐에서 문제가 감지 된다. 그의 커다란 가방이 탐색대를 지나지 못한다. 매서운 눈빛의 직원이 모니터에 바짝 다가가 안에 무엇이 들었나 보고 또 보더니 결국 찾아냈다. 

바로 이것들! 서너번의 검사를 통해 뽀족한 나이프 여러벌과 드라이버 기타등등이 나왔다. 조심하라고, 우리는 철두철미해야한다고 엄중한 얼굴로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그 사람 가방에서 이런게 나왔어!  


걸린 물건은 재빨리 튀어나가서 공항 안에 있는 택배소를 이용하였다. 

여기까지는 재미있었다. 20시간 뒤에 벌어질 무시무시한 일에 비하면..

어찌되었던 대한항공을 탔다. 비행기는 역시 으흐흣, 기내식! 이 순간을 위해 내가 비행기를 탔잖아. 오늘의 식단은 뭘까. 혹시 채식식단이 있는 지 물어봤다. 그런 건 하루 전에 얘기 해야한다면서 대신 맛난 녹차와 과일 기내식을 준비해주셨다.

우와우 완전 좋아! 다다, 전부 다 너무너무 맛있다. 체리 좋아, 파인애플 사랑해. 드디어 나도 어디론가 멀리멀리 가는 구나. 

특히 이 녹차도 너무 맛있었다. 진한 녹차의 맛, 아마 가루녹차인 것 같다.

 

남편은 대한항공 회원가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팜플렛을 보니 기내 안에서도 바로 가입할 수 있고 당일 마일리지도 받을 수 있다길래 승무원 분께 문의하여 남편을 가입시켰다. 우후후, 나도 대한항공 가족이 생겼어~~ 이제 마일리지 합칠 수도 있고 주거니 받거니 할 수도 있다. 

한국 항공기를 이용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미리 무언가 연습하고 있는 기분. 이 다음부터는 한글이 없다. 좀 불안하다. 비상시 대피요령 영문본을 한글본과 대조해가며 미리 읽어보았다. 미리 준비해둔 것은 없지만 어떻게든 일본에 도착했다.  

슬쩍 처다본 그녀의 핸드폰은 온통 일본어다. 그것을 능숙하게 다루어 일본어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도 잘도착했다는 뜻이겠지? 그녀의 바로 뒤에 있는 남편은 한글로 일본에 도착했다는 문장을 쓰고 있다. 비행기로 2시간이 걸리는 가까운 곳인데도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신기하다.

저녁 11시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니 버스, 전철 다 끊기고 공항 근처에는 걸어갈 수 있는 숙소가 없다고 한다. 큰 짐은 공항 짐보관소에 맡기고 남편과 라운지를 찾아헤메다 발견한 하네다공항 국제선 4층의 에도시대 거리. 공항에 이런 짓을.. 일본인들 답다. 작은 규모지만 그래도 일본에 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음이 고맙다.  

용돈을 주자 남편은 일본 자판기에 열광 하였다.

공항에는 수면실은 없고 라운지만 있는데 저녁 9시까지 운영 한다고 한다. 아니 이보게, 그게 무슨말이오! 그,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들은..

노..숙? 노숙, 공항노숙인거다. 주위에 사람들이 돈 아끼려고 공항에서 자고있나보다 쯧쯧 이 사람들..했는데, 그게 바로 내 모습이었던거다! 지금 이 시점에는 푼돈 따위 쓰잘데기 없는거다. 이건희 아저씨처럼 돈 많으면 몰라도..

이곳이 바로 우리의 첫 숙소다. 아늑한 조명과 은은한 애니메이션 음악이 나오는 이곳, 아으아 중고딩 시절도 생각나고 침대도 참 푹신했다.

힐링 조금하고 또 다른 숙소를 찾아 나선다. 이제 슬슬 지친다.. 나, 나를 그냥 잠들게 해줘..

전날도 밤을 샜다. 그래도 나는 조금자고 출발했지만 남편은 한 순간도 잠들지 못했다. 그 몸으로 가장 무거운 짐을 들고 내 몸을 걱정해준다. 저쪽 풀때기들 뒤에 가려져있는 벤치가 우리의 두번째 잠자리다. 자신이 짐을 보겠다며 내가 먼저 잠들길 권한다. 벤치는 딱딱하고 차갑다. 잠들기 힘들다. 몸이 흐믈흐믈 녹아내릴 것 같다. 눈을 감고 잠에 집중한다..

3시간 정도를 잤을까.. 그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정미 미안.. 하..한시간만 잘게.' 

그가 잠들고 까페에 앉아서 짐을 보며 일기를 쓰려고 일기장을 펼쳤다. 남편이 남긴 일기 끝은 이렇게 마무리 되어있었다. 

 음.. 그래 내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머리,몸통,다리. 중요포인트만 포착 된 낭비 없는 그림이다. 나도 그 아래에 그의 잠든 모습을 남겨줬다.


몸은 수고롭지만 정신은 말짱하다. 아무 계획 없이 일본 체류. 뭐.. 미리 뭔가 준비해오지 않아도 죽지는 않는구나. 죽지 않을 정도로 고생할 뿐. 문득, 검지손톱 밑이 따끔하다. 손의 수고로움, 설거지 음식물과 쓰레기를 맨손으로 급히 처리하고, 동전을 세알리고 짐을 이동하고.. 살짝 갈라졌다. 그때서야 손의 수고로움을 느낀다. 

암스테르담 가는 항공기를 타기 위해 일본에 10시간을 머물러야한다. 잠온다. 한 시간 뒤, 곧 6시 25분이 되면 나리타공항으로 떠나는 새벽 첫 전철를 탈 수 있다. 나리타공항의 라운지는 아침 8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가능한 빨리 이곳을 떠나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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