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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27 2013.07.28~ 하울리씨네 홈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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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 않으면 그들은 같이 기다릴 것이다. 한쪽은 어서 귀가 해야 할 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눈치다.
그들까지 몇 시간이고 이 공항에서 대기 할 필요는 없다.
"그럼 남편은 남겨두고 같이 가지요."
남편이 고생하겠지만 건강이나 목숨에 위협이 될 상황은 아니니 시간이 지나면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하고 입국장으로 다시 뛰어갔다. 덩치 큰 요원 아저씨가 막아선다.
"안에 짐을 두고 왔어요. 짐을 두고 왔어요."
영어로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다급한 표정으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알겠다. 하지만 너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잠시만 기다려라. 다른 일행은 없나?"
나는 그를 데리고 픽업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그들과 짐 분실 신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더니,
바로 우리 뒤에 있던 공중 전화 수화기를 들어 보인다. 번호 하나를 알려주며 "이 곳으로 전화를 걸면 내부와 연결이 된다."
시범을 보인다. 연결 되지 않는다. "그들이 늦게 받을 수도 있지만 계속 시도해봐라."며 그는 홀연히 제 자리로 돌아갔다.
세 번을 연달아 연결을 시도 했지만 되지 않는다. 초조해 하고있는 가운데, 로밍 하지 않는 내 핸드폰으로 전화벨이 울린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남편으로부터 온 인터넷 전화다.
일본, 암스테르담에서 단 한번도 와이파이에 연결 된 적 없던 핸드폰이 지금에서 연결 된 것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남성의 친절로 노트북 밧데리를 연결하여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항 관계자들에게 유학원 현지 지사장의 연락처를 알려줘서 현재 협의에 들어간 상태이고,
한국 지사 쪽은 혹시 모를 상황에 새벽 시간에도 기상하여 대기 중이라고 한다.
자신은 언제 나가게 될 지 모르니 먼저 숙소로 들어가라고 한다.
아무 일 없이 잘 입국했으면 그도, 픽업 팀도, 현지 지사도, 한국 지사도 평안하게 평소대로의 일상을 보냈을 텐데,
여러가지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온다.
픽업팀이 다시 내부로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안되는 것이 아닌가, 우울한 생각에 잠겨갈 때 쯤 수화기 저편에서 응답이 들려왔다. 다시 입국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검문대를 다시 거쳐야 한단다.
5분 쯤 지났을 까, 벽이라고 생각했던 어둑 어둑 한 곳에서 키 큰 남성이 나왔다.
그곳에 문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 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을 보안 요원이라 소개한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 하고 긴 복도를 중심으로 여러 문들이 있었고,
복도 끝의 문으로 들어서자 새로운 복도가 다시 나타났다. 함께 온 픽업 팀 여성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부터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권을 소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우 공손한 자세로 인사를 한다.
보안 요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 생겨난 문들 중 하나로 나를 안내했다.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작은 규모의 검색대가 있었고, 두 명의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번째 검문 수속, 함께 온 남성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고 있다.
외투를 벗고, 시계를 풀고 가방을 검색대에 올린다. 액체 류는 따로 꺼내 제시한다.
검색은 지금까지 보다 더 섬세했다. 그냥 지나쳐왔던 필통 속의 자까지 꺼내 날카롭지 않은지 확인 된 뒤에야 통과 할 수 있었다.
공항 관계자는 내가 마지막으로 타고 왔던 Aer Lingus 항공사로 안내 해줬다.
안에서 금발의 직원이 나와 종이를 한 장 준다. 이름을 적고 분실 된 가방 두 개의 모양과 색깔을 차례 차례 작성 했다.
모든 게 어둑하고 눅눅한 기분이다. 이런 걸 적어도 찾을 수나 있을까..
맨 마지막 문항은 체크만 하면 되는데 해석이 되지 않는다. YES라고 체크하고 넘기기에는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모두 NO라고 체크하면 된다고 한다. 제..젠장 YES라고 체크했으면 그나마 있던 운도 날릴 뻔한 거잖아.
식은 땀을 내쉬며 돌아섰다. 곧장 출구로 나가라고 한다. 필요 없다. 천천히 걸으면서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다.
제지 당한다면 별 수 없지만 일단 가는 거다. 그저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뒤돌아보지 말고, 뛰지도 말고
2분의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른다. 좋다, 이제 많이 걸어왔다. 출구 반대편인 입국심사대로 몸을 틀었다.
상황을 파악 해보고 같이 나올 수 없다면, 얼굴이라도 보며 먼저 간다고 말이라도 해야 걱정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입국심사 대에 도착한 그 순간, 그가 철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매우 지친 표정, 땀으로 젖은 얼굴과 티셔츠.
눈이 휘둥그래져서 어떻게 된 거냐 물었다.
그는 위축 되어 있었고, 말을 잘 잇지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 빠른 속도로 뭐라뭐라 다그치는 압박감과 기약 없는 기다림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더듬 더듬 거리며 갈증을 호소 했다.
언제나 기운 차 있던 남편의 모습에서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함께 편의점으로 가서 시원한 생수 1리터와 장시간 기다려 준 픽업팀을 위해 주스 2 병을 샀다.
1주 비자만 받고 통과했고 그 시간 안에 모든 서류를 정리해서 이민성으로 가야한다고 한다.
보통 4주의 기한을 주는 데 1주라니.. 딱딱함의 수치가 점점 현실감을 잃어간다.
픽업팀의 차를 타고 도시 중심을 지나 남쪽의 샌디포드에 도착, 앞으로 3주동안 지내게 될 하울리 씨 댁에 도착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도착하게 되어 송구스럽다며 픽업팀 여성분이 하울리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 하울리 부인은 픽업 팀의 영어를 칭찬하며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
바닥은 하얀 카페트가 깔려 폭신폭신 하다. 마실 것을 권했지만 너무 지친 우리는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 골아떨어졌다.
이불 감촉이 부드럽고 포근했다. 왜 어른들이 이불을 살 때 좋은 것을 고르라고 하시는지 알 것 같다.
언젠가, 어딘가에 정착하게 된다면 질 좋은 잠옷과 이불을 갖고 싶다.
결혼식 날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 여기까지 들고 왔다. 내가 이런 선물을 받았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고 고맙다.
그리고,
..잘썼다. 친구들아.
다음날 아침, 은은하게 풍겨나오던 꽃향기가 이 백합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몇달 뒤에나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 했던(반은 포기 했었던) 우리의 캐리어가 바로 집 문 앞까지 배달 왔다.
우리는 신이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아침은 간단한 토스트와 시리얼이다. 식탁 너머로 보이는 하울리 씨네 정원 풍경은 참 아름답다.
학원에 가는 날 점심은 샌드위치를 싸주신다. 햄, 닭가슴살, 참치 세 종류의 샌드위치가 번갈아 가며 매일 바뀐다.
함께 싸주시는 오렌지 주스와 초코릿 바를 먹다보면 미국의 틴에이져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절대 어기지 않아야 할 약속, 6시의 저녁식사.
하울리 부인이 성심 성의껏 만들어 준비하기 때문에 늦으면 얼마나 늦을 것인지,
못먹게 되면 적어도 4시간 전에는 미리 말을 해줘야, 그녀가 고생을 덜하고 음식도 버려지지 않게 된다.
약속시간에 늦게 되면 미리 연락을 드려 도착예정 시간을 알린다.
그러면 그녀는 우리가 올 시간에 맞춰 보관 해뒀던 음식을 다시 뎁혀서 내주신다.
우리와 함께 했던 이탈리아 청년들이 매번 예고 없는 지각과 외식을 반복 해 그녀를 많이 화 나게 했다.
그녀가 화 내면.. 무섭다.
식사를 마치면 디저트를 주신다. 이것 마저도 전부 그녀가 만든다. 그녀가 직접 만든 루밥파이는 정말 최고다!
치즈와 설탕으로 만든 하얀 크림도 너무 맛있다.
어느 펍이나 음식점에 가서 파이를 시켜도 그녀가 만든 파이보다 맛있지 않았다.
40년 전에 요리학과를 졸업하셨다고 한다.
솜씨가 빵집이나 요리집을 차려도 될 정도인데 왜 안하냐고 물었더니, 그런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집과 정원을 관리하고, 요리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신다.
우리가 있는 곳의 집 번호이다. 집집마다 다른 무늬로 꾸며져있다.
앞 정원도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다. 이곳은 앞 정원과 뒷 정원이 나눠져 있어,
앞 정원만 봐도 뒷 정원이 어떻게 꾸며져 있을 지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7월의 아일랜드는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답다. 갖가지 꽃들의 색깔이 눈을 즐겁게 한다.
심지어 길가의 가로수 밑에도 조그맣게 예쁜 꽃들을 심어 놓았다.
이 나라는.. 처음에 그렇게 겁을 줘 놓고서 이젠, 아름다운 모습들을 뽐내며 우릴 맞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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